“하수구에서 거주하는 여성, 반지하에 갇힌 한국의 청년들”

  • 등록 2025.06.04 15:43:08
크게보기

씨앗티움공동체, 사회주택 "우리집" 유현진 대표, ‘우리집’이라는 이름의 사회주택, 고립청년의 회복을 위한 새로운 실험

 

최근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한 하수구에서 기어나오는 여성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로즈’라는 이름이 알려진 이 여성에게 필리핀 정부는 긴급 지원금을 약속했지만, 일각에선 “미봉책일 뿐”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수구에서 나오면 8만 페소(약 200만 원)를 준다고요? 나도 기어 나가야겠네요.”

 

이 사건은 단지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주거’라는 문제를 어떻게 사회가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와 관련해, 경계선지능과 고립은둔 청년들을 위한 주거공동체 ‘씨앗티움’에서 운영하는 사회주택 "우리집"의 유현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겐 하수구 대신 반지하가 있고, 고립  침묵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 필리핀 ‘하수구 여성’ 보도를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사진을 처음 봤을 때, 필리핀이 아니라 한국의 반지하가 먼저 떠올랐어요.
그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고립청년, 경계선지능 청년들.
그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거든요. 누구도 모르고,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아요.”

 

“지금 한국 사회에도 하수구는 있습니다. 형태만 다를 뿐입니다.”

 

 

“복지보다 먼저, ‘같이 살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 씨앗티움이 운영하는 주거공동체 ‘우리집’은 어떤 공간입니까?

 

“‘우리집’은 돌봄이 아니라 동행을 전제로 합니다.
청년들과 밥을 함께 해요. 고기를 볶고 설거지를 같이 하죠.
누군가가 늦잠을 자면 다른 친구가 슬며시 밥을 덥혀놓습니다.
그게 복지보다 먼저 필요한 ‘관계 회복의 기초’입니다.”

 

“경계선지능이나 발달지연, 느린학습자들은 자립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함께 살 수 있다’는 연습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죠.”

 

“돈을 주는 것보다, 삶을 나누는 일이 더 어렵지만, 더 오래 갑니다.”
― 필리핀 정부는 여성에게 가게 창업을 위한 지원금을 지급했습니다. 이런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기적으로는 필요할 수도 있지만, 돈은 지속 불가능한 방식입니다.
‘혼자 살아봐’라고 하며 돈을 건네는 건, 오히려 버려두는 것일 수 있어요.
청년들 중에는 주거 이전에,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씨앗티움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관계 기반 자립’입니다.
내가 누군가와 살아도 괜찮다는 경험.
그게 있어야 삶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요.”

 


“‘자립’은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입니다.”
― 고립된 청년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접근은 무엇일까요?

 

“방 하나, 자원 하나 던져주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누군가 나와 밥을 먹어주고, 아플 때 병원에 같이 가줄 수 있는 사람,
일이 힘들 때 잠깐 쉴 공간이 있다는 감각.
그게 주거복지의 본질이자, 씨앗티움이 하려는 일입니다.”

 

“실제로 ‘우리집’에 입주한 청년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 누가 밥 해준 적 거의 없는데… 밥솥 열다가 울었어요.’
그게 삶의 시작이자 회복의 단서라고 믿습니다.”

 

“기부가 아니라, 삶을 잇는 연대입니다.”
― 씨앗티움은 어떻게 지속되고 있나요?

 

“큰 재단의 지원 없이, 시민들의 소액 후원과 저희의 자립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카페, 농사, 작은 도서관, 교육 등 생계와 교육을 겸하는 구조예요.”

 

“저희는 삶을 회복하는 사소한 기술들을 함께 나누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는 집, 함께 살아도 안전한 공간.
그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작은 하우징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의 한마디 | 정안뉴스 박유빈 기자

하수구에서 기어 나오는 여성의 모습은 극단적 장면이 아니라 경고였다.
한국에도 집은 있지만 ‘함께 살 곳’이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
씨앗티움은 그들에게 지붕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 있는 집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주거의 정의가 되어야 한다.


 

박유빈 기자 bagyubin96@gmail.com
Copyright @정안뉴스 Corp. All rights reserved.






본사 : 경남 함양군 덕유월성로 495번지 1층 l 사업장 주소 : 대구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530(감삼동,삼정브리티시용산) 104동 505호 | 후원계좌 : 기업은행 안정주 01020492922 등록번호: 대구,아00482 | 등록일 : 2023-12-20 | 발행인 : 안정주 | 편집인 : 안정주 | 전화번호 : 010.5439.2218 Copyright @정안뉴스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