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를 중심으로 한국 서각의 전통을 지켜온 미목(美木) 이주강 선생은 평생을 서각에 헌신하며 우리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에 앞장서 왔다.
■ 서각과의 인연, 그리고 입문
이주강 선생이 서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30대 중반 무렵이었다.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시절, 초등생 아들과 함께 서예를 배우던 중 계헌 이상태 선생의 문하에서 서각을 접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마치 신세계를 본 듯 서각에 빠져들었다”는 그는, 은사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서각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중 수소문 끝에 청사 안광석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수년간 서울을 오가며 전통 서각의 진수를 전수받는 행운을 얻었다. 이후 그는 미목서각연구실을 열고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나섰다. 연구실은 곧 입소문이 나면서 작품 주문이 쇄도하는 작업의 장이 되었다.
■ 기능에서 예술로, 서각의 위상 확립
1979년 대덕서각전을 통해 첫 작품 세계를 선보인 그는 “서각은 단순히 문자를 새기는 기능이 아닌, 상징을 담는 예술”이라 강조해왔다. 실제로 그는 기능적 차원에 머물던 서각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서예와 서각을 함께 갈고 닦았다. 1985년에는 대구서각연구회(현 미목서각회)를 발족해 격년제 전람회를 이어오며 대중과 소통했다. 또 1992년 한국미술협회 대구지회가 주관한 제12회 서예대전에서는 전국 최초로 서각 부문 공모전을 개최하는 계기를 마련, 이후 각종 공모전에 서각이 확산되는 발판을 만들었다.
■ 학문적 기반과 교육 활동
서각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계명대 미술대학 서예과에서 서각 특강을 시작으로, 1997년 대구예술대 서예과에서 전국 최초로 학점이 인정되는 서각 강좌를 개설했다. 그는 2009년까지 국내 최초의 서각 전임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헌신했다.
■ 대표작과 활동
그의 대표작으로는 해인사 법보전 현판, 불국사 대웅전 주련, 송광사 대형 현판, 반야심경 서각 작품 등이 있다. 또 해인사 성보박물관, 영암 대웅전, 팔공산 동화사, 태백산 환불사 등 전국 주요 사찰과 공공기관에 200여 점의 현판과 서각 작품을 남겼다. 현대적 공간에서도 그의 발자취는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 현판, 삼성현역사문화관 내 원효불기 서각 등이 대표적이다.
■ 예술과 수행, 끝없는 배움
현재도 이주강 선생은 “불자로서 늘 배움과 깨달음에 목마르다” 라며 해인사 장경도감 판각학교(안준영 각자장) 2기에서 서각을 넘어 판각 작업까지 배우며 대장경을 새기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배우는데는 나이가 상관 없다”며 평생을 서각에 헌신하며 예술과 수행을 삶으로 실천하는 그는 "배움은 끝이 없으며, 서각은 나의 평생 도반"이라고 강조한다.
■ 전통의 불씨를 잇는 서각가
대구서각협회 활동, 문화센터와 사회교육원 강의 등을 통해 후학을 길러내며 그는 여전히 우리 전통 서각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기능적 서각을 예술로 끌어올리고, 교육과 창작을 통해 서각의 가치를 널리 알린 그는 오늘날 ‘살아있는 증인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서각가’로 평가받고 있다.
정안뉴스 안정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