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판각학교(2기 안준영 각자장 반)에서 판각을 배우고 있는 박정민 수강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판각이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삶의 의미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매주 해인사로 향하는 길을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날려버리는 여행 같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판각학교를 찾는 이유에 대해 “대장경을 새기는 큰 의미와 우리 문화유산을 이어가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생 의류업계에서 활동해 온 그는 베네통, 콕스, 닉스, 롤롤, 지오지아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VMD(비주얼 머천다이저)로 근무하며 매장 인테리어와 디스플레이, 상품 연출 등을 담당해 왔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서울패션협회와 브랜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온라인 의류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그가 판각의 길을 알게 된 것은 국가 문화재와 역사에 관심이 많던 동생의 권유 덕분이었다. 4남매 중 특히 형제애가 깊다는 그는 “동생과 함께 배우다 보니 서로 의지가 되고,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까지 하게 됐다”고 전했다. 처음 판각학교를 찾았을 때의 느낌에 대해서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
우리 몸의 질병이 기운의 쏠림에서 비롯되듯, 인간관계의 갈등 역시 서로 다른 '에너지 벡터(Vector)'가 충돌할 때 발생합니다. 사상의학의 승강완속(升降緩束)이라는 방향철학은 내 몸을 이해하는 의학이자, 나와 다른 궤도를 도는 타인을 껴안는 훌륭한 관계의 심리학이기도 합니다. 가장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는 일상의 현장, 고3 수험생 자녀를 둔 가정의 거실 풍경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자녀의 학습 태도를 두고 부모는 종종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입니다. "지금 당장 바로잡아야 해!" (소양인의 升) 한쪽 부모는 방에서 쉬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애가 탑니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지금 당장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안 돼. 지금 저렇게 넋 놓고 놀고만 있어서 대체 될 일인가!" 이 부모는 십중팔구 기운이 맹렬하게 위로 솟구치는 소양인(少陽人)일 확률이 높습니다. 앞서 소양인의 슬픔과 에너지는 '타인을 향한 깊은 공감과 개입'에서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녀의 불안한 미래를 마치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강렬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위로 치솟는 이 뜨거운 에너지(승, 升)는 가만히 속으로 삭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당장 방문을 열고 들어가
해인사 판각학교(2기 안준영 각자장반)에서 팔만대장경 복각을 위한 전통 판각 교육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요반에 참여 중인 예술인 김선희 씨가 판각을 배우며 느낀 소감과 전통문화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김선희 씨는 종합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으로, 자신의 고향인 합천 해인사에서 진행되는 팔만대장경 복각 전통각법 교육에 매력을 느껴 2025년 6월 음각 교육부터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전북 전주 완판본 맥잇기 프로그램을 통해 판각을 접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책을 찍어낼 수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작은 글씨를 정교하게 새길 수 있다는 점 자체가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특히 판각은 일반 긴시간 서각 작업을 해온 김씨에게는 서각과 달리 수많은 글자를 정교하게 새겨야 하는 작업인 만큼 집중력과 체력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글자 수가 많아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계속 앉아서 작업해야 하다 보니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작은 글자를 반복적으로 새기다 보니 눈도 많이 피로해지지만, 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매우 크다”고 전했다. 또한 해인사라는 공간에서 판각을
경남 합천 해인사 장경도감 판각학교에서 전통 판각의 맥을 잇는 배움이 이어지고 있다. 전주 완판본 맥잇기 활동에서 취미로 시작한 판각이 이제는 수행과 소명으로 확장된 사례가 있다. 공무원 신분으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꾸준히 판각을 이어가고 있는 김영규 각수는 전통기술을 체득하며 고려시대부터 이어진 장인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단순한 기술을 넘어 ‘책을 만드는 종합예술’로서의 판각, 그 깊이를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Q. 간단한 자기소개와 직업, 해인사 판각학교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저는 전주에서 취미로 판각을 시작한 김영규입니다. 현재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통기능에 대한 호기심으로 판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전주 완판본 맥잇기 15기 과정을 시작으로 점차 깊이 빠져들었고, 지금은 해인사 장경도감 판각학교에서 안준영 각자장반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판각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처음에는 단순한 기술로 생각했지만,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흥미로운 분야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판각이라는 장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크게 느꼈습니다. Q. 판각
진료실에서, 혹은 사석에서 종종 마주하는 질문입니다. 엑스레이에 찍히지 않고, 현미경으로 보이지 않는 '기(氣)'나 '체질'을 이야기하다 보니, 현대 과학의 기준에서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철학 정도로 여겨지는 까닭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상의학의 세계로 한 걸음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이 학문이 얼마나 치밀한 인과관계와 합리적인 물리 법칙 위에 세워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사상의학을 가리켜 ‘인체 내부에 작용하는 에너지 벡터(Vector, 방향성과 크기)를 다루는 가장 논리적인 의학’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의 중심에는 바로 ‘승강완속(升降緩束)’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는 에너지의 방향성 사람의 몸은 고정된 조각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에너지가 순환하는 유기체입니다. 사상의학은 이 에너지의 움직임을 위(升), 아래(降), 밖(緩), 안(束)이라는 네 가지 물리적 방향성으로 규명했습니다. 단순히 "소양인은 성격이 급하다", "소음인은 소화기가 약하다"는 식의 단편적인 결과론은 사상의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그 ‘원인(방향성)’을 논리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잡아본 판각용 칼과 망치 2025년 6월부터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진행 중인 판각학교 2기 토요일반에 참여하고 있는 강대술(姜大述, 眞覺) 교수는 2023년에 대학 강단을 내려왔다. “아내가 몸이 아프면서 치료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을 다니고 있던 2023년 10월 무렵이었어요. 재직했던 부산 경성대학교의 한국한자연구소에서 HK+사업으로 ‘전통판각정규강좌’가 개설되면서 현재 해인사 판각학교 2기 안준영 각자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일반인 몇 분을 포함하여 재직 중인 교수들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던 판각 강좌에 그는 동료 교수의 추천으로 등록하여 판각이라는 작업을 처음으로 접해 보았다고 한다. 천자로 새긴 갑골문이 판각의 세계로 이끌다 “판각 강좌 추천을 받고 처음에는 생애 후반기 취미로 팔자에 없는 목판화도 해보고, 멋진 글씨나 도장도 새겨보면 재미있는 취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칼과 망치를 잡은 지 벌써 3년차가 되었다고 한다. 강좌 과정 처음에는 그림처럼 생긴 금석문자도 새겨보고 <주해천자문> 음각으로 칼질 기초를 배우고 난 뒤, 부산 판각 수강생들은 이산 안준영(완판본문화관
해인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경도감에서 진행중인 팔만대장경 판각 교육 과정이 전통 기록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포항에서 무릉서각을 운영하며 서각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목은 김영미 작가는 해인사 판각학교에 참여하며 전통 판각의 깊이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김영미 작가는 평소 서각과 선각 작업을 주로 해오던 가운데 해인사 팔만대장경 복각 소식을 접하며 안준영 각자장반(이산책판박물관 관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항상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고 전통 각(刻)에 대한 관심이 컸다”며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작업에 참여하고 싶어 판각학교에 오게 되었다”고 참여 계기를 설명했다. 판각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에 대해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전통서각의 깊이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며 “한 획 한 획 새김질을 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경건함과 감사함을 느끼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왕복 4시간의 거리를 달려 해인사로 향하는 월요일이 저에게는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하루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서각과 판각의 차이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서각이 보이는 형태 그대로 글과 그림을 표현하는 작업이
손으로 만드는 작업에 대한 관심이 전통 판각의 세계로 이어졌다. 시가바를 운영하며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한 시민이 해인사 판각학교에 참여하며 전통 판각의 깊은 의미를 체험하고 있다. 송명규 회원은 평소 좋은 시가와 다양한 위스키를 통해 사람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나누는 시가바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손으로 만드는 작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지인을 통해 해인사 판각학교 프로그램을 알게 되면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손으로 하는 작업에 흥미가 있었는데 판각학교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판각을 접했을 때의 인상에 대해서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의미를 느끼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나무에 글자만 새기면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담아가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판각 작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으로는 글자를 거꾸로 생각해야 하는 과정과 실수에 대한 긴장감을 꼽았다. 그는 “글자를 거꾸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고, 조금만 실수해도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특히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해인
팔만대장경의 정신과 전통 판각 기술을 배우는 해인사 판각학교에서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진용숙 회원은 서양화를 전공한 미술인으로, 현재 함안미술협회 부회장이자 예그리다 단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마산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서양화 강사로 활동하며 지역 미술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진용숙 회원은 지인의 소개로 판각학교를 알게 되었고, 평소 매일 아침 절을 찾는 생활을 이어오던 자신에게 해인사 판각학교는 “소중한 도량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첫 수업 날, 팔만대장경의 위엄에 숙연해졌습니다” 진용숙 회원은 판각학교를 처음 찾았던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처음 가는 날 너무 설레서 잠을 설칠 정도였습니다. 교실에 들어가자 안정주 부강사님께서 따뜻하게 맞아 주셨고, 안준영 각자장님과 여러 보조 강사님들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교실 분위기가 마치 따뜻한 예전의 학교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팔만대장경의 역사와 의미를 가까이에서 접하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숙연해졌다고 말했다. “팔만대장경의 위엄이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이런 의미 있는 작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판각은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는 공동 작업” 진용숙 회원은 판각 작
이산책판박물관(관장 안준영)이 주최한 특별 강연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안정주 기획실장의 사회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영각사의 역사적 의미와 전통 목판 출판 문화의 가치를 조명하는 학술·문화 행사로 마련됐다. 천년 고찰 영각사와 박물관의 공간적 의미 이산책판박물관은 영각사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전통 판각을 연구·전시하는 전문 공간이다. 영각사는 876년 신라 헌강왕 2년에 심광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 고찰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특히 화엄각과 판전의 역사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자료에 따르면 1689년 화엄경을 간행했으나 1770년 화재로 경판이 소실되었고, 이후 설파 상언의 명으로 1774년부터 다시 판각을 시작해 1775년 완성 후 장경각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연담 유일의 「안의영각사화엄각신건기」에는 “이 절은 명산 거찰로서 영호남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전국 제방으로부터 인경 거리의 균형을 고려하여 정한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영각사가 영남과 호남을 잇는 전략적 경전 유통 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260년간 12종 불서 간행… 판전 중심 사찰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진행 중인 판각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박언숙(朴彦淑, 평등행) 시인은 시를 쓰는 문인이자 35년째 꽃집을 운영해온 생활인이다. 1960년 경남 합천 야로에서 태어난 그는 2005년 계간 『애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잠시 캄캄하고 부쩍 가벼워졌다》, 《여기는 동지입니다》를 펴냈다. 제5회 이윤수문학상을 수상했고, 대구문인협회 격월간 『대구문학』 편집위원과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그가 최근 선택한 새로운 길은 바로 해인사 판각학교에서 안준영 각자장반에서 수행중이다. “노후의 놀이를 찾다, 운명처럼 만난 판각” 박 시인은 “몇 년 전부터 현업에서 손을 놓으면 어떤 보람 있는 소일거리를 붙들어야 할지 고민했다”며 판각학교 참여 계기를 밝혔다. “작년 봄, 시골 집을 오가다 차 안에서 우연히 판각학교 모집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곧바로 해인사 홈페이지를 검색했고, 망설임 없이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에게 판각은 우연이 아닌,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기억의 귀환이었다. “아버지의 칼 소리… 눈물겹도록 반가운 작업” 처음 나무판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의 감촉과 칼이 지나간 뒤 풍기는 향이 저
정안뉴스 안정주 기자 |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2월 8일 오후 3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소재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제작된 ‘조선 후기 주요 인물 문집 책판 3점’(척암선생문집 책판, 송자대전 책판, 번암집 책판/ 각 1점)을 미국인과 재미동포 소장자로부터 각각 기증받았다. 이번에 기증되는 유물들은 1970년대 초 한국에서 근무했던 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구입해 미국으로 가져갔던 책판들로, 당시 국내에서 도난 혹은 분실된 책판들 중 일부가 기념품으로 둔갑한 뒤 외국인들에게 판매되어 해외로 반출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1970년대 문화유산 국외 반출의 실태와 양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번에 기증받은『척암선생문집』 책판(1917년 판각)은 을미의병(1895) 당시 안동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김도화(1825~1912) 선생의 문집 책판으로, 당초 1,000여 점이 있었으나 2015년 '한국의 유교책판'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19점이 일괄 등재된 상태다. 이후 2019년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으로 독일 경매에서 재단이 1점을 구입해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했으며, 이번에 해당 책판과
반계수록은 유형원이 살았던 시대의 상처와 질문에서 출발한다. 임진왜란에 이어 병자·정묘호란으로 이어진 국난은 조선 사회의 기틀을 뒤흔들었고, 그 여파는 단순한 전쟁 피해를 넘어 제도와 인식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요구했다. 반계수록이 ‘개혁’을 반복해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호란으로 인한 정변은 국가 운영의 허점을 드러냈고, 유형원은 이를 회피하지 않고 토지·조세·행정·교육의 구조적 개혁으로 정면 돌파하려 했다. 이 사유는 처음부터 널리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반계수록은 필사본으로 전해지며 사상가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동했고, 영조대에 이르러서야 경상감영에서 관찰사 주관으로 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백불함 최흥원에게 필사본을 토대로 한 목판 제작이 의뢰된다. 이 결정은 개인의 사유를 공공의 기록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선택이었다. 전란의 경험을 딛고 국가를 다시 세우려는 문제의식이 비로소 사회 전체의 질문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언론인의 자리에서 반계수록을 바라보면, 이 책은 시대를 향한 집요한 질문의 기록이다. 호란 이후의 혼란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고, 유형원은 감정이 아닌 현실 진단과 제도 설계로 답했다. 언론
대한민국 전통공예협회 초대작가이자 사무국장,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심사위원과 국제종합예술대전 운영위원·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인 화이 이화진 선생. 경주시청과 골굴사, 유럽 7개국 선무도 회외 지원 현판, 포항중앙여고 등 다수의 작품 소장처를 보유한 그는 현재 경주 골굴사 상설 전시장과 ‘화이각자회’ 공방을 운영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그는 또 하나의 길에 들어섰다. 개인 예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서각을 넘어, ‘함께 완성하는 예술’인 판각의 세계다. Q. 먼저, 선생님의 예술 여정을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삼아 살아온 지 어느덧 45년이 되었습니다. 글자를 새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과정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서각이라는 예술을 통해 제 안의 세계를 표현해 왔고, 지금은 경주에서 공방과 상설 전시장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Q. 판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해인사 판각학교에 참여중인 송암 선생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인 작업에 충실하던 제게 “함께 완성하는 예술을 경험해 보라”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품은 이 천년 고찰의 한켠에서, 오늘도 나무를 마주한 장인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해인사 판각학교에서 복각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강노석(姜魯錫·호 가천) 씨는 올해 67세. 그는 스스로를 “건강한 중년”이라 부르며, 인생의 후반부를 전통기술과 불교 정신을 잇는 길 위에 올려놓았다. 강 씨는 남들보다 조금 이른 은퇴 후, 한옥학교 소목과정을 수료하며 창호 제작과 가구 제작을 배웠다. 현재는 경북 고령군 쌍림면 용리 502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지금도 매일 나무를 만지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목재와 함께해 온 세월이 어느덧 그의 일상과 신앙, 그리고 문화유산을 향한 사명감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제 그의 곁에는 또 하나의 동반자가 있다. 딸 강미숙 씨 역시 해인사 판각학교에 함께 참여하며, 아버지와 나란히 나무 앞에 앉아 칼을 들고 있다. 한 사람의 장인이 걷던 길은, 어느새 가족이 함께 이어가는 전통의 길이 되었다. “두려움 속에서 시작된 첫 판각” 강 씨가 해인사 판각학교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고령에서 서각실을 운영하는 심강 시승부 선생의 권유였다. 서각실 회원들과 함께 문을 두드린 이 학교는, 그에게 새로운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