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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길을 묻고, 말씀을 새기다” 해인사 판각학교 수강생 박언숙 시인 인터뷰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진행 중인 판각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박언숙(朴彦淑, 평등행) 시인은 시를 쓰는 문인이자 35년째 꽃집을 운영해온 생활인이다. 1960년 경남 합천 야로에서 태어난 그는 2005년 계간 『애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잠시 캄캄하고 부쩍 가벼워졌다》, 《여기는 동지입니다》를 펴냈다. 제5회 이윤수문학상을 수상했고, 대구문인협회 격월간 『대구문학』 편집위원과 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그가 최근 선택한 새로운 길은 바로 해인사 판각학교에서 안준영 각자장반에서 수행중이다. “노후의 놀이를 찾다, 운명처럼 만난 판각” 박 시인은 “몇 년 전부터 현업에서 손을 놓으면 어떤 보람 있는 소일거리를 붙들어야 할지 고민했다”며 판각학교 참여 계기를 밝혔다. “작년 봄, 시골 집을 오가다 차 안에서 우연히 판각학교 모집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곧바로 해인사 홈페이지를 검색했고, 망설임 없이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그에게 판각은 우연이 아닌,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기억의 귀환이었다.

 

“아버지의 칼 소리… 눈물겹도록 반가운 작업”

처음 나무판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의 감촉과 칼이 지나간 뒤 풍기는 향이 저를 먼 시간 속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야로면에서 도장을 파셨습니다. 칼과 나무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곁에서 들으며 자랐지요. 제게 가장 따뜻했던 한 시절입니다.”

그는 “판각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 아버지와의 시간”이라며 “눈물겹도록 반가운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붙이고, 떨어지고, 다시 붙이며 배우는 인내”

판각 작업은 섬세함과 인내를 동시에 요구한다.

“글씨의 세밀한 획을 새기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판하본을 붙이는 풀 작업부터 칼갈이까지 모두 중요합니다. 애써 붙인 글씨가 칼에 의해 떨어지고 사라질 때면 허탈합니다. 다시 찾아 붙이며 인내를 배웁니다.”

그는 “이제야 조금씩 인내력이 생기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해인사에서의 늦공부, 특별한 귀향”

고향 야로면과 가까운 해인사는 그의 기억 속에 늘 자리한 공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갔지만, 제 오래된 추억 속에는 해인사가 빠질 수 없습니다. 늘그막에 이곳에서 늦공부를 하게 되니 의미가 더욱 특별합니다.”

판각을 만나며 그는 오랜 도시 생활의 미련도 내려놓게 되었다고 한다. “주말이면 다른 일정을 모두 미루고 마음이 먼저 이곳으로 향합니다.”

 

“대장경을 제대로 공부할 마지막 과제”

해인사와 고려대장경은 그에게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었다.

“언젠가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바람만 품고 있었는데, 이제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 마지막 과제를 풀어볼 좋은 시간 같습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손의 온기”

디지털 시대에 전통기술의 의미를 묻자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AI가 해결할 수 없는 일, 또 해결해서는 안 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전통기술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손의 온기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나무의 결을 묻고 달래며 역사를 새기는 일. 그는 “그 소중한 작업에 자신의 손길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길동무가 되어줄 나무”

시인의 길, 꽃을 팔아 생계를 이어온 길, 그리고 또 다른 길.

“그 수많은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운명처럼 만났습니다. 서툰 걸음이지만 당분간 이 길이 제 앞을 가로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나무의 길을 찾아 말씀을 새기는 이 놀이가 해 저무는 줄 모르길 바란다”며 “우여곡절 끝에 나무와 서로 정 드는 날, 마지막 길동무가 되어 줄 따뜻한 저녁 풍경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해인사 판각학교는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닌, 삶과 기억, 그리고 시간을 새기는 또 하나의 배움의 장이 되고 있다. 박언숙 시인의 판각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깊은 울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안뉴스 안정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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