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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우리가 놓친 얼굴들] 느린 걸음도 도착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경계선지능 청년을 위한 사회주택 '우리집' 이야기

 

세상에는 길을 잃은 이들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막상 한 걸음을 떼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이들.
그들은 수십 번, 수백 번 마음을 다잡은 끝에 겨우 문을 연다.

 

경계선지능 청년들, 이른바 느린 학습자들이 그렇다.
평균보다 느린 이해력, 더딘 손놀림. 그러나 그들이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홀로 살아야 하고, 일해야 하며,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는다.
빠르고, 정확하며, 효율적인 삶을 강요할 뿐이다.

 

나는 미얀마에서,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스스로 살아가려는 의지는 넘쳤지만, 손을 내밀어 줄 이 없었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던 이들.
느린 학습자 청년들의 걸음을 볼 때마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구조란 단순한 손길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곁을 지키는 일이다.

 

씨앗티움공동체가 운영하는 사회주택 '우리집'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구조선이다.
이곳은 느린 학습자 청년들이 삶을 연습하는 공간이다.
실패를 허용하고, 반복을 지지하며, 느린 걸음을 존중한다.
장을 보러 가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분리하는 일상.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이, 이곳에서는 치열한 배움의 과정이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천천히 자신을 알아간다.
실패 속에서도 다시 시도하는 법을 배우고, 옆 사람의 속도에 맞춰 걷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여겨왔던 오랜 오명을 벗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이었다.

 

한 청년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가 되었고,
또 다른 청년은 사회복지센터 직원으로서 매일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고 있다.
그들의 걸음은 느렸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스스로 길을 열어갔다.

 

'우리집'은 작지만, 확실한 구조선이다.
느린 학습자들에게 사회라는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하는 다리가 되어준다.
여기서 청년들은 '자립'이라는 막연한 구호 대신,
'내 손으로 밥을 짓고, 내 힘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배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립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 작은 구조선을 더 많이 띄우는 것.
그리고 그들이 건너편에 닿을 때까지 성급히 재촉하지 않고, 함께 숨 고르며 걸어주는 것.

 

느린 걸음이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집' 같은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우리 모두가 조금 더 따뜻해진 사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전덕찬 | 씨앗티움공동체 고문
미얀마 인명 구조 활동 및 국내외 긴급구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느린 학습자와 경계선지능 청년의

자립을 지원하는 씨앗티움공동체에서 자문 및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일, 느린 걸음을 기다려주는 일에

헌신해오고 있다.

 

 

 

정안뉴스 유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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